비 오는 날의 범부채

2017. 7. 10. 18:56일상






범부채

학명: Belamcanda chinensis (L.) DC.

꽃말: 정성어린 사랑



비 오는 날의 범부채/오공


비가 원 없이 내린다

가뭄때 내려 달라는 기도 빨이 너무쎘는지

꽃들이 혼절직전에 자빠지고 쓰러진다.


몇 년 전 심은 기억도 없는 꽃이름도 몰랐던

녀석인데 간섭 없뜨락 저 구석에서 부채펼치듯

수십 포기로 자라면서 꽃봉오리를 매달자


백합이 고결한 모습으로 피고

다알리아가 우아한 모습으로 꽃피자

붉은점 뒤집어 쓴 범부채  덩달아 꽃을 피운다.


잎이 옆으로 펴지며 자라나는  모습이 부채를 닮고

꽃은 호피무늬처럼 보인다고 불려지

범부채가 베시시 웃으며 수십송이의 꽃잎을 연다.


범부채의 특징은  꽃이 꼭 하루만 꽃잎을 열고는

꽈베기 베베꼬듯 일생을 마감하는데

이렇게 살려고 긴긴날을 돌아 왔던가?


씨방이 갈라지면 포도송이 같은 씨앗이 들어있는데

"범부채는 한해에 한 거름씩 길을 간다"는

안 상학 시인의 글귀가 생각난다.


씨앗이 무거워 바람에 날려도 범부채 키만큼

한 거름 이상 못 간다는 뜻인것 같다.







꽃피기 직전의 모습

다음날 꽃핀후 생을 마감한다.

























꽃이 지고나면 꽈베기 틀듯

돌돌 말아올린다







작년이 찍어둔 씨방의 모습








씨앗이 반짝거리며 눈길을 끈다

알의 크기는 녹두알만하다,

이 사진도 작년에 찍어둔 것이다.








뜨락에 핀 범부채의 모습이고

안상학님의 시를 옮겨본다.





범부채가 길을 가는 법

 안상학


범부채는 한 해에 한 걸음씩 길을 간다

 

봄내 다리를 키우고

여름내 꽃을 베어 물고

가으내 씨를 여물게 한다

겨울이면 마침내 수의를 입고 벌판에 선다

겨우내

숱한 칼바람에 걸음을 익히고

씨방을 열어 꽃씨를 얼린다

때로 눈을 뒤집어쓴 채 까만 눈망울들 굳세게 한다

 

그리하여 입춘 지나 우수 어디쯤

비에 젖으며 바람에 일렁이며

발목에 힘 빼고 몸 풀어

쓰러진다 온몸으로 쓰러진다

키만큼 한 걸음 옮긴 곳에 머리 풀고 씨를 묻는다

 

발 달린 짐승이라 해서 인간이라 해서

이와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범부채의 일생, 꼭 그럴 것이다

 

범부채는 한 해에 딱 한 걸음씩 길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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