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3. 3. 14:55ㆍ나의 글
2017.11.21.
곰순이 천상으로 떠나갔다.
며칠후면 향기를 가득 담아 봄소식을 전해줄
매실나무가 서 있는 양지바른 곳에 솥뚜껑만 한
작은 봉분이 만들어졌다.
못해준 사랑과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사이
곰순이가 잠들 수 있는 작은 봉분이 만들어 지고
슬픔에 흐느끼는 아내의 아픔도 함께 묻어 주었다.
땅속에 묻고난 텅 빈 마음을 안고 언덕을 내려온다.
어깨를 감싸 안고 몇 발자국이면
닿을 수 있는 집이 왜 그리 멀게만 느껴질까?
마음 아파하는 집 사람
안면마비로 만사가 귀찮아 제대로 예뻐해 주지 못해서일까?
슬프게 우는 아내의 모습이 안쓰럽다.
빈 그릇에 물과 사료, 간식 챙겨주는 나그네
외출하는 나그네 뒷모습만 멍하니 쳐다본다는 곰순이
외면받던 울 마누라 섭섭도 했겠다.
여러 채의 개집을 소유한 부자 곰순이지만 언제부턴가
부귀영화도 마다하지 않고 데크바닥에서 잠을 청한다.
여름이면 나무밑에 구덩이를 파고 더위를 식히는가 하면
겨울이면 눈 속에서 잠드는 모습을 보면서 애써 야생성이
강해서 그럴 거야라고 해석하곤 했는데...
말 못 하는 짐승이라지만 세심하게 살피지 못한 나그네의 실수로
제 명을 다하지 못하고 먼 길 떠나게 만들었으니
자책해서 뭘 하겠는가?
나그네 곁을 홀연히 떠나버렸으니 용서를 빌 수도 없다.
추울세라 데크 위에 깔개를 만들어 잠자리를 마련해 주었는데
미끄러지고 흩트러지는 깔개를 잡아주던 짱돌
곰순이 궁둥이 때가 묻은 짱돌을 봉분 표지석으로 남겨
잊혀질 위치와 외로움을 함께 해 준다.
나그네 부부의 명이 다 할 때까지 우리 내외의 하루하루를
내려다보고 있겠지.
분당에 사는 큰 아들 내외가 단숨에 달려온다.
곰순이 죽음으로 나그네 내외가 아파하는 마음도 위로할 겸
잃어버린 입맛과 건강을 위해 큰 대게를 준비해 달려왔다.
시간 날 때마다 시골 올 때는 언제나 간식을 챙겨 와
꼬리치는 곰순이에게 사랑을 듬뿍 주던 아들내외였는데
사놓은 간식 두 봉지가 남았다며 들고 온 모습에서 망연자실
애절한 슬픔이 엿보인다.
곰순이는
2012년 에비 비호의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 비호는 이름 그대로 비호처럼 날쎈도리였으며
곰순이도 비호처럼 용맹해 산에서 멧돼지 새끼들을 사냥하곤 했는데
심장 사상충에 걸려 제 명을 다하지 못하고 승천하였다.
집 안에서 키우는 개들처럼 사랑을 듬뿍 주지 못한 생각만 난다.
데크에서 한 발자국도 현관에 발을 들려놓지 못한 채
외출하고 돌아오면 현관 앞에서 마냥 나그네 부부의 일상을 지켜보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이럴줄 알았으면 방안으로 데리고 들어와 며칠간만이라도
함께 해 주었으면 하는 자책이 들지만 곰순이 성격상
밖이 더 그리웠을거야!!
애써 변명해 본다.
여러 날 여행기간 내내 식음을 전폐하고 기다린다.
나그네 부부가 도착한 순간부터 음식을 먹기 시작하니 미안하고
안쓰럽고 마음을 아프게 했던 곰순이다.
여행 중 먹지 않고 기다리는 곰순이를 위해
분당에 사는 아들 내외가 찾아 허기를 면하게 해 준다 하지만
우리 부부가 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리는 모습과
한 가족으로 산 모습이 아련하다.
하루에 두서너번 화목 보일러에 불을 지피고 올때나
외출하고 돌아오면 언제나 같은 장소에서 빚쟁이처럼
꼬리를 흔들며 사랑해 달라던 모습들
간절함이 묻어나는 눈길에 턱도 없이 모자란 간식으로 화답하던
그것이 나그네가 곰순이를 대하던 사랑법이었으니
이러한 나그네 모습 때문에 화가 나고 마음을 슬프게 한다.
2012.3.5
왼쪽이 곰순이
2012. 4.2
2025.2.7.
2020.5.25.
겨울이면 어김없이 눈 속에서 잠들던 곰순이
이 모습을 보면서 야생성이 강해서일 거야!!
늘 이렇게 생각했는데
강한 곰순이도 아픈지 이틀만에
내 곁을 떠나 천상으로 떠나갔네.
2025.3.1
곰순이 승천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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