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4. 23. 22:05ㆍ구르미 머무는 언덕
뜨락에서 데크로 올라서려면 작은 계단이 두 군데 있는데
10여 년을 밟고 다니다 보니 중병이 들었다.
재수 없는 사람이 밟아 다칠까 봐 노심초사 끝에
의사를 찾았다.
목수님을 말하는 것인데
두 군데 계단을 수술하려면 2~3일 걸린단다.
하루 왕진료가 30만 원
60~90만 원이 들어갈 것 같다.
하기사 농사일 하루 일당도 13만 원이라는데
일할 사람이 없단다.
마누라한테 늘 눈칫밥 얻어먹는 처지에
잘 보이려는 나그네
톱과 망치에 재료만 있으면 완치시킬 수 있을 것 같아
나그네가 수술해 완치시킬게 큰 소리 치자
울 마누라 왈 계단 완치시키는 값 보다 다리 머리 허리
아프다며 약골 고치는 값이 더 나가겠단다.
재료를 사 오고 낡아빠진 계단 해체하니 어디 한군데 성한 데가 없다.
10년간 오일스텐을 열심히 칠한 보람도 없이 말이다.
경험도 없는 나그네 무작정 일을 벌이니 앞이 캄캄해진다.
큰소리 친 죗값이지만 연구에 연구 끝에 결론을 낸다.
해체한 계단을 역순으로 재고 톱으로 자르면 될 것 같아
요리조리 재고 선 그은 그대로 톱으로 자르고 나사못 박으며
조립하는데 서툴고 엄청 힘은 들었지만 이틀에 걸쳐 완성해 내니
울 마누라 커피에 먹을거리 챙기느라 생고생 했지만
고생했네 한마디에 아픈 데가 사르르 녹아내린다.
아픈 데는 없느냐며 내 몸 걱정이 앞서나 보다.
무척 힘들고 아픈 데가 많았지만 사내대장부가 뭐 이런 일로
아플까?
나무를 재단하고 오일스텐을 바르고 나사못을 박으려고
앉았다가 서기를 반복하니 안 쓰던 근육 모두에 파스로 도배질
했지만 사실 일어나기도 안기도 힘든 노동이었다.
큰돈을 벌어다 주고 마누라 앞에서 큰소리치는 나그네
상남자처럼 알통도 없는 알통에 힘 자랑 해 본다.
몇 년 만인지 모르지만 마누라 칭찬에 뿌듯한 이틀이었다.
♥♥♥
나그네 집에 성큼 다가온 봄 날씨로 왕겹벚꽃이
분홍 미소를 지으며 힘들어하는 나그네에게 미소를 건넨다.
일 하느라 예뻐도 해 주지 않았는데
며칠 전까지 벚꽃에 목련이 큰소리치며 으스댔는데
이 삼일 사이에 가지가 찢어지도록 많은 꽃을 매달고
나보다 더 예쁜 꽃 있으면 나와보라는 듯 집안을 훤하게 밝힌다.
만인들이 좋아하는 두릅도 시간을 다투며 커간다.
한두 시간 지나면 이파리로 변해가는 두릅
중병 수술하느라 아픈 허리지만 집 안팎 모두 수거했는데
마누라 제천에 사는 처제에게 그간 따 놓은 쑥과 부추
그리고 두릅을 포장해 첫 봄 선물로 준단다.
이렇게 봄은 언제 와서 언제 어디로 가는지 궁금할 뿐이다.
집안으로 들어오는 계단
반대편 계단
해체된 계단 몰골이 말이 아니다.
자재.
다 쓰고 남은 각목 그냥 놔 두기 보다
주차장 옆 비막이 공사에 서 볼까 생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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