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1. 25. 19:08ㆍ구르미 머무는 언덕
올 겨우내 나그네 집 난방을 책임질 화목(참나무) 10t이
일명 제무시에 실려와 잔디밭을 처참하게 만들며 와르르 토해낸다.
70년 전 GM에서 만든 군용차를 우리식 발음으로 제무시라 불렀는데
오늘 화목을 싣고 온 제무시는 전쟁통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그 후 생산된 것이 아닐까 추리해 본다.
지금은 산판에서 나무를 산 아래로 내리거나 재목을 싣고 제재소로 가거나
10여 t의 화목 나무를 필요한 집까지 운반하는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힘이 넘쳐나 아직도 옛 모습을 간직한 채
산판에서 사랑을 받는 괴물 같은 존재일 것이다.
몇십 년간 닦고 조이고 기름칠로, 엔징은 엔징대로 적재함은 적재함대로
누더기 옷 기어 입듯 붙이고 때우고 칠하면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니 몇 년은 더 견디며 화목을 실어 나를 것 같다.
오늘 실려 온 화목은 나그네 손에 의해 수백 토막으로 잘릴 것이며
시간 나는 대로, 맘이 내키는 대로 조금씩 쌓아 놓으면 6개월 동안
지글거리며 타는 보일러의 겨울 밥이 될 것이고
나그네는 잘라낸 나무토막과 씨름하며 겨우내 화부 인생으로
24시간 꺼질세라 노심초사하며 불타는 모습을 지켜볼 것이다.
친구가 보내준 철원오대쌀 20kg 6포대와 나그네가 기른 배추로 담근
김치, 오늘 제무시에 실려온 10t의 화목 등이 있으니
지금처럼 계속 건강만 허락한다면
내년 봄까지 배부르고 등 따시게 보낼 수 있을 것이며
이런 잔잔한 모습들이 모이고 쌓이면
작은 행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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