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부채의 일생

2015. 8. 7. 10:35구르미 머무는 언덕

 

씨앗이 자기 키만큼 날아다니며 번지는 범부채...

칼날처럼 생긴 잎새가 붓꽃처럼 자라더니 어느덧 어른티가 나면서 부채살

퍼지는 모습의 이 꽃을 범부채라고 부른다는 이웃분들 이야기로 이 꽃을 알게된다.

 

"정성어린 사랑"이란 꽃말을 갖는 이 꽃은 황적색바탕에 검은 반점이 자유롭게

그려져 호랑이털처럼 생겨서 그 이름이 범부채라 붙인것 같고

안상학 시인의 "범부채가 길을 가는법" 이란 시를  옮겨 실어본다.

이 분의 허락없이 이 시를 인용하는 무뢰를 용서 해주시기를 바램 해 본다.

 

범부채가 길을 가는 법

 

안상학

 

범부채는 한 해에 한 걸음씩 길을 간다

 

봄내 다리를 키우고

여름내 꽃을 베어 물고

가으내 씨를 여물게 한다

겨울이면 마침내 수의를 입고 벌판에 선다

겨우내

숱한 칼바람에 걸음을 익히고

씨방을 열어 꽃씨를 얼린다

때로 눈을 뒤집어쓴 채 까만 눈망울들 굳세게 한다

 

그리하여 입춘 지나 우수 어디쯤

비에 젖으며 바람에 일렁이며

발목에 힘 빼고 몸 풀어

쓰러진다 온몸으로 쓰러진다

키만큼 한 걸음 옮긴 곳에 머리 풀고 씨를 묻는다

 

발 달린 짐승이라 해서 인간이라 해서

이와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범부채의 일생, 꼭 그럴 것이다

 

범부채는 한 해에 딱 한 걸음씩 길을 간다

 

 

 

- 2015년 <유심> 1월호

 

 

** 안상학 시인

1988년 <중앙일보> 등단

시집<그대 무사한가> <안동소주> <오래된 엽서>

<아배 생각>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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