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령포 가는길

2015. 7. 5. 09:46여행

 

 

내가 사는 곳에서 그리 멀지않은 영월에서 장이 열리는 날이다.

귀촌하여 알게된 부부와 함께 장도 볼겸 청령포를 찾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장을 둘러본 후 다시찾은 청령포를 보는순간 슬픔

한이서린  이곳이 관광지로 탈바꿈으로 변한 모습에

왠지 서글픈 마음이 들었고

 

내가 사는 제천시 백운면 화당리 "배재고개"가 있는데 귀양가던

단종이 한양을 향해 마지막 인사를 했다는 곳이기도 하여

배재고개라 불렸다고 한다.

 

 

 

강건너에 청령포가 산으로 둘려쌓여 있고 관광객들 모습과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배가 보인다.

 

 

 

배에서 내려 슬픈 사연이 담긴 청령포로 들어가는 관광객과

 

 

 

쓸쓸하게 이곳 저곳에 피어난 꽃들이 아름답기는커녕

슬픔의 한으로 핀것 같아 슬프고 슬프게 보인다.

 

 

 

 

 

단종이 유배생활로 보낸 단종어소

"단종어소는 승정원 일기의 기록에 따라 기와집으로 그 당시의 모습을 재현했다"

고 하며

 

 

문화해설사가 청령포에 대해 설명하고 있으며 오른편엔"단묘재본부시유지비"

가 세워져 있으며 1763년 층높이162cm 크기의 오석으로 만들어 졌는데 앞면에는

"端廟在本府時遺址"(단종이 이곳에 계실때의 옛터이다)라는 글이 영조대왕의 친필로

음각되어 있고 영조39년에 세워졌다고 함 (발췌함)

 

 

 

 

단종어소를 향해 소나무가 인사를 드리고 있는 모습

참으로 신기하고 신비스럽다.

 

 

 

단종을 모시던 궁녀들의 거처 

 

 

 

소나무로 둘러쌓인 이곳을 청령포수림지라고 부르며

모든 소나무가 단종어소를 향해 인사드리는 모습으로 서 있다

 

 

 

관음송 상부의 모습

 

 

 

관음송(국가지정 천연기념물 제349호)

단종이 유배생활할때 두 갈래로 갈라진 이 소나무에 걸터앉아

쉬었다고 하며

 

단종의 유배당시의 모습을 보았으며(觀)

때로는 오열하는 소리를 들었다(音)는

뜻에서 관음송(觀音松)이라 불려 왔다고 하며

소나무 크기는  높이30m 둘레5m 수령은 600년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단종 유배시의 수령은 약 60년생으로 추정된다고 한다(발췌)

 

 

 

멀리서 찍은 단종어소

날씨가 쾌청하여 그런지 슬픔을 간직한 곳으로 보이지 않으며

관광객들도 휴일 나들이로 이곳을 찾는것 같다.

 

 

 

망향탑과 노산대로 오르는 전망대길

 

 

 

망향탑

크기는 약 1m정도의 보잘것 없는 탑으로 단종이 쌓았다고 해오며

자신의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근심속에서 한양에 두고 온 왕비 송씨를

생각하며 여기저기 흩어진 막돌을 주어 쌓았으며 단종이 남긴 유일한

유적이라고 함

 

 

 

노산대..

해질 무렵이면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던 곳으로 노산대라

불려지는 이곳이 이젠 아이들의 놀이터로 변하여 마음이 무거웠다.

 

 

 

 

단종어소로 들어가는 관광객 모습..

 

 

 

 

금표비

동서로 300척 남북으로490척과 진흙이 쌓여 생기는 곳도 통행을 금지한다는

비석으로 당시 이곳에 민간인의 출입을  막기위해 금표비를 세웠다고 하며

1척은  대략 31cm로 계산 할 수 있고 영조2년에 세웠다고 한다.

 

 

 

관광객들의 흔적들

 

 

 

두견새 우는 청령포 노래비

 

 

 

단종이 사약을 받고 죽음을 당한 동헌객사 관풍헌..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는 자의 삼족을 멸한다는 서릿발에도

호장 엄홍도가 장마에 떠낸려가는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여

현 장릉에 모셨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