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도

2010. 6. 18. 17:14나의 글

      임도

                    오 영 상

내가 사는 화당리엔 삼봉산으로 오가는 삼거리가 있다.

옛날 주막거리로 불렸던 곳으로 너럭골과 임버럭골로 가는

초입이 된다. 이곳에 8km가 넘는 임도가 설치되어 있다.


앞쪽을 바라보면 우측은 삼봉산이, 좌측은 멀리 백운산이 배재

쪽으로 뻗어 내려와 항아리 속을 들여다보듯 깊은 골자기를

만들고 흐르는 물은 아픈 사연을 안고 쉼 없이 흐른다.


U자 형태의 임도가 시작되는 동네엔 원시적이지만 손수 개성

넘치게 집을 지어 자유분방하게 사는 분, 지방 궂판 다닌다는

스님, 주말에 내려와 밭일로 바쁘게 사는 분이 있다.


포효하는 호랑이를 나무로 조각한 집 앞 이다. 그 밑에 부부

이름이 이채롭다. 괴짜 냄새 풀풀 난다. 벙거지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웃통을 벗은 채 밭일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


땀범벅 우리 일행에게 보시의 손길을 내민다. 조그마한 체구의

등 쪽으로 파리똥 주근깨가 풍년이다. 부지런히 여닫는 냉장고에

주기가 오르고 걸쭉한 입담이 시작된다.


괴짜는 300년을 살거라고 허풍질이다. 삼봉산 에서 산삼

수 백 뿌리 켔단다. 눈 먼 산삼이 다른 산에서 집단 이주

해 왔단 말인가? 허풍이 온 몸의 땀을 몰아낸다.

 

야곰야곰 사들인 땅에선 새끼 더덕이 기대기 그물을 타고

탐스럽고 귀한 몸 자랑이다. 몇 년후 수십억 된다고 뻥을 친다.

믿을 사람 없지만 괴짜 놀음이 전염병처럼 퍼져 나간다.

 

바리케이트가 허세를 부린다. 임도로 가는 차량을 제한 한다.

새 자물쇠가 눈을 부릅뜨고 복제열쇠를 통제한다. 잘난 관리자

기고만장에 열쇠 빌리려 아양 떠는 사람들 신음소리 들린다.


숲길 대장군과 여장군이 화장기 없는 창백한 얼굴로 길손들을

맞는다. 옆에는 남대문 복원에 써도 될 잘생긴 소나무들 골절상

으로 생을 마감했다. 눈비 때문일까? 산신령님이 노해서 일까?

  

산모퉁이 사이로 처녀의 가슴속 산딸기가 수줍은 얼굴로

유혹의 손길을 보낸다. 시샘 부리는 복분자 덤불들도 여름을

재촉 하고 검보랏빛 오디의 감촉이 오감을 자극한다. 


흰 드레스 입은 여인의 냄새다. 찔레의 군락지다. 숨 막힐 듯

진한 향에 사춘기 아련한 모습 구름 사이로 흐른다. 매콤하고

가시돋힌 향이 바람결 메아리 되어 멀리 멀리 퍼져간다


뱀이 몸부림쳐 지나간듯 산허리가 잘려지고 파헤쳐져 본래의

모습을 앗아갔다. 단장의 미아리 고개처럼 아픔을 잉태한 길이다.

우리는 이 길을 임도라고 부르고 산불 방화용 길이라고도 부른다.


산속 나무들이 힘차게 혁명의 깃발을 들고 행군을 시작한다.

푸른 옷 갈아입고 비바람과 태풍에도 노도와 같이 흉물을 복원해

간다. 산새들은 벌과 나비들을 부르고 임도를 간호한다.


길옆에는 산속 주인들의 영역 표시가 지문처럼 선명하다. 젊은

이의 기백처럼 당당히 피어나는 야생화는 절정을 못 이겨 감미

로운 향기를 칵테일 해서 분수처럼 내 뿜고 숲속을 정화한다.


호식총이 있었다는 임버럭골, 호랑이가 표효했을 넓은골

엔 화전민 삶의 고단한 흔적이 보인다. 어딘들 달려가는

종교는 어김없이 숲속의 정적을 깨고 파괴의 선을 넘나든다.


임도의 시작과 끝인 너럭골엔 코가 닿는 언덕으로 콘크리트 길

만들어 처절하게 자연을 파괴한다. 어린사과 나무들 사열장

만들기 위해서다. 자연과 인간이 맺은 공존이 깨지는 순간이다.


임도의 관리자는 산림조합이다. 아름다운 골자기 파괴범이다.

생수사업이란 미명으로 사유지를 좌지우지 임도의 깊은 잔해를

남기고 나 몰라라 한다. 밭 부치는 동민들에게 각서의 칼로 가슴

아픈 상처를 남긴다.

                                               2010,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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