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5. 30. 18:26ㆍ나의 글
고사리 찬가
오 영 상
문 열자 우리집 개 “거북”이가 새벽 산책을 재촉하며 꼬리를 흔든다.
어제 심은 야콘 과 양파에 물줄 여유도 주지 않는다. 큰 통 과 조리에
물을 담아 내려오면서 주려고 준비해 놓고는 “거북”이를 쫒아 뒷산으로
오른다. 어제와 같은 방향으로 갈 예정인데 “거북”이는 길머리에서 내 눈치
를 보며 앞장 서 가려고 온갖 애교를 부린다.
고사리 나는 곳은 언제나 먼저 지나는 사람에겐 풍성한 곳이다.
비온 후 잽싸게 산으로 오르는 자에겐 더 큰 풍성함을 주며 그 주변
고사리를 남김없이 갖고 가지만 다음 날 또 다른 고사리들은 밤새 쏘옥
땅을 비집고 올라 와 긴 목을 자랑해 보지만 채취하는 사람 손에 꺾여
자신의 일생을 바치는 신비한 산나물 이다.
전 지구상에서 우리나라 사람들만 먹는 고사리, 소에게 생으로 먹여 보니
암에 걸릴 수 있는 확률이 90%이상이라는 고사리, 오랫동안 많이 먹으면
정력이 나빠진다는 속설을 안고 사는 고사리, 맛뿐 아니라 고사리를 꺾을
때 손으로 전해지는 느낌과 촉감은 말로 표현 할 수 없다. 강태공들 고기
잡는 손맛과 비교 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기쁨을 주는 산나물인 것은 틀림
없을 것이다.
제삿집에 빠질 수 없는 것이 고사리 이다. 진수성찬 제수물 인들 뭐 하겠는가?
다른 제수물 은 한두 가지 빠져도 이해 할 수 있지만 고사리가 상에
못 오르면 그날 제수를 준비해온 제주와 아낙들은 얼굴 들 수 없을 것 이다. 물론
이런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으나 약방의 감초처럼 상에 오르는 것이 고사리가
아닌가? 제사 밥에 넣어 비벼 먹는 맛이란 고사리가 한 자리 하기 때문이리라.
오늘도 “거북”이가 저 멀리 묘지 쪽 에서 날 기다린다. 어제와 같은 코스
로 가기 때문 일 것이다. 흙 목욕을 했는지 낙옆 썩은 잎들로 온 몸 을 장식
하고 있다. 혀를 길게 내 밀고 헉 헉 하며 입김을 내 뿜는 것이 기분이 꽤나
좋은가 보다. 주변을 한바퀴 돌면서 코를 박아 고사리 쪽 으로 나를 안내한다.
산속으로 들어가면 작년에 말라죽은 고사리가 자랐던 곳이나 이름 모를 묘지
에서 고사리를 볼 수 있다. 이런 곳을 고사리 밭이라고 한다. 처음 이러한
장소를 찿아 낸다면 다른 날 보다 더 많이 뜯을 수 있으며 채취 하는 자 는
내내 즐거웠으리라.
좋은 명당에 모시기 위해 지관을 부르는 등 열성과 정성껏 만들었을 묘지일
것이다. 묘지에는 후손 들이 다녀간 흔적이 있는 남아있는 곳이나 없는 곳이나
어김없이 할미꽃과 고사리 그리고 은 초롱 을 자랑하는 둥굴레가 묘지를 빛내고
있다. 명당이라 그럴까? 이런 곳이 고사리를 찿는 사람들의 주 무대이다.
영광[?]은 후손이 아니라 고사리 찿는 자의 몫으로 돌아가니 말이다.
후다닥 소리가 들리며 “거북”이가 덤불속으로 달려 들어간다. 꿩 새끼 울음소리
가 요란 하다. 허탈한 모습으로 덤불속에서 나오는 “거북”이를 보니 사냥개의
후손인지 의심스럽다. 하지만 오늘도 산속 오르내리기를 수 십 번 반복 하며 나름
대로 짐승 잡는 법을 터득해 나가는 “거북”이가 명견의 자질이 있는 것 같이 보인다.
한 시간 남짓 고사리를 땄지만 말려야할 양은 제법 되는 것 같다. 산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내어준다. 싱그러운 냄새가 바람결에 옷깃을 스치며 머리를 맑게 해주고
이름 모를 야생화 냄새와 어울려 폐부 속 깊이 향기를 넣어 준다. 계곡물은
음악 소리처럼 우리들의 영혼을 맑게 해주며 또따른 탄생을 위해 묵묵히 흐른다.
삼봉산 너머에 붉은 빛이 동쪽을 물들이고 있다.
2010, 5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