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한국의 서원 "도산서원"

2019. 12. 20. 08:06아침을 열며









<사적 제 170호>




세계문화유산 한국의 서원 "도산서원"/오공


12월15일 오후 늦게

세계유산 봉정사를 구경하고 남은 시간이 아까워

40분 거리에 있는 도산서원을 찾았다.


역사적인 장소를 다니기 전에

그 곳 역사에 대한 지식을 알고 가면

문화유산에 대한 예의 같은데


 생각 없이 즉흥적으로 네비따라 도착하니

보이는 건물이 도산서원 이구나

지레짐작으로 짚어본다.


늦은 시간이라 해설사들도

안 보이고 겨우 한 분이 단체손님들에게

해설을 끝내고는 홀연히 가버린다.


서원 사진만 찍고 유물전시관에서

퇴계선생의 발자취를 느끼려 했으나

시간이 허락치 않아


휘리릭 둘러보는 것으로는

세계문화유산의 가치를 알고 가기엔 부끄러워

시간 나는 대로 다시 찾아 볼 생각이다.







퇴게선생이 자주 찾았다는

"천연대"로 가는길


천연대는 도산서원에서 약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으며

퇴계선생께서 돌의자에 앉아 강을 바라보는 장소이다.










시사단(試士壇)

-지방 유형문화재 제33호-

조선 정조 16년(1792) 정조 임금이 평소에 흠모하던 퇴계선생의 학덕을 기리고 지방

선비들의 사기를 높여주기 위해 어명으로 특별과거인"도산별과"를 본 장소이다.

총 응시자가 7.223명이었고 임금이 직접 11명을 선발하였다고 함.

도산서원앞 안동호 건너편에 있음

<퇴계선생 사후건물>











시사단 전망대 가는 길 버드나무에

손에 잡힐듯 겨우살이가

일행을 반겨준다.







도산서원 전경









도산서원 앞뜰에

왕버들이 묘기를 부리고 있다.







도산서원 입구

<퇴게선생 사후 건축물>







정문으로 들어서자 우측에

"도산서당"이 있다.








도산서당(陶山書堂)

퇴계선생께서 4년에 걸쳐 지으신 건물로 몸소 거처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거처 하던 방은 "완락제"(玩樂齊)라 부르고 마루는"암서헌"(巖栖轩)이라 불렀다.

이곳이 도산서원의 핵심이고


퇴계선생 생존시 건물은

도산서당,농운정사,역락서재 등이고 사후 부속건물이 들어선 것 같다.










농운정사

제자들이 공부하던 기숙사이다.

선생께서 제자들에게 공부에 열중하기를 권장하는 뜻에서 한자의 "工"자 모양으로 짓도록 하였다.

공부하던 동편마루를 "시습재"라 하고

휴식하던 서편마루를"관란헌"이라 하였다.

<퇴계선생 생존시 건물>







진도문

<퇴계선생 사후건물>







전교당(典敎堂)

서원의 중심건물로 조선 선조7년(1574)건립된 대강당이다.

도산서원의 사액현판이 게시되어 있으며 스승과 제자가 함께 모여 학문을 강론하던 곳이다.

<퇴게선생 사후 건물>





한석봉이 쓴

현판글씨










   



홍의재*박약재

도산서원의 유생들이 거처하면서 공부하는 건물로 지어진 집이다.

서로 마주보고 있는데 동편 건물을 박약재 서편건물을 홍의재라 한다.

<퇴계선생 사후건물>







광명실(光明室)

책을 보관하던 서고로서 현판은 퇴계선생 친필이다.

동*서 두곳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습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누각식으로 지었다.

<퇴계선생 사후건물>






유물 전시관

퇴계선생의 유품과 전적류가 전시되어 있다.

당시 만든 것으로 혼천의가 눈길을 끈다.

<퇴계선생 사후건물>









도산서원 앞 안동호에

저녁이 내려앉는다.




오늘따라 여객기의

하얀선이 유난히 믾이 보인다.



세계문화유산 도산서원

사적 제170호. 1574년(선조 7) 지방유림의 발의로 도산서당의 뒤편에 창건하여 이황의 위패를 모셨다. 1575년 선조로부터 한석봉(韓石峰)이 쓴 '도산'(陶山)의 사액을 받았다. 영남유림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으며,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 당시에도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서원 중의 하나였다.

1969~70년 정부의 고적보존정책에 따라 성역화 대상으로 지정되어 대대적인 보수를 했다. 경내의 건물로는 이황과 제자 조목(趙穆)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는 상덕사(보물 제211호), 서원의 강당인 전교당(보물 제210호), 향례 때 제수를 두던 전사청, 유생들이 거처하던 동재·서재, 장서를 보관하던 광명실·장판각, 이황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도산서당, 제자들이 거처하면서 공부하던 농운정사 등이 있다. 매년 봄과 가을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도산서원은 2019년 7월 6일, 제4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16~17세기에 건립된 다른 8개 서원과 함께 오늘날까지 한국에서 교육과 사회적 관습 형태로 지속되어온 성리학과 관련된 문화적 전통의 증거이며 성리학 개념이 여건에 맞게 바뀌는 역사적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한국의 서원(Seowon, Korean Neo-Confucian Academies)'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의 14번째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날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9개 서원은 소수서원(1543년 건립), 남계서원(1552년 건립), 옥산서원(1573년 건립), 도산서원(1574년 건립), 필암서원(1590년 건립), 도동서원(1605년 건립), 병산서원(1613년 건립), 무성서원(1615년 건립), 돈암서원(1634년 건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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