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2. 16. 15:04ㆍ일상
세계유산 봉정사/오공
어느 분의 블로그에 소개된 봉정사
제천에서 1시간 30분이면 갈수 있는 거리이기에
일요일 오후 1시쯤 도착한다.
겨울이라 하지만 풀린 날씨에
제법 많은 분들이 봉정사를 찾는다.
일요일이라 서둘러 올라갈 시간인데..
영산암 나한님 존상에 우담바라 꽃피었다는
프랭카드를 보면서
올커니 냉큼 올라가 보았지만
내 눈엔 보이질 않으니
공력이 약해서 일까?
괜스레 마음만 들떠 신자들만 야속하다.
영국여왕이 다녀갔다는
설명이 유난히 돋보이지만
우리의 유산을 어떻게 생각하고
평가할까?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나랏말싸미"의 영화 배경이 된 영산암
세월의 무게에 찌들었지만
구름 한점 없는 파란하늘
하얀 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비행기
하늘에 걸린 감 하나 둘
외로워 보이지만
누구를 기다릴까?
모자란 듯한 내 마음에
위안을 주는 주변 그림들이
신선하게 다가온 하루였다.
천등산 봉정사
대웅전
1999년부터 2001년 초까지 이루어진 해체 보수공사시
1435년 조선 세종 17년에 중창하였다는 묵서명이 발견되며 연혁이 밝혀졌다.
정면 3칸,측면 3칸의 단층 건물이며 건물 앞에는 축대를 높이 쌓았다.
건물 앞에는 툇마루를 설치하였는데 이러한 방식은 사찰건축에서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예로 이 대웅전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툇마루 모습
절에서는 볼 수 없는 대웅전의 툇마루가
인상적이다.
부처님과
협시불인 관세움 보살과 지장보살
안동 안정사 석조여래좌상
이 불상은 안동군 월곡면 미질동에사 발굴된 것으로 그 곳에 있던 안정사에 보관되어 있었다.
본래는 연화좌대에 안치된 석불상인데 안정사 주지가 방에 안치하면서 금분을 칠해 원형이 다소 손상되었다.
대좌와 광배는 없어졌다.그 뒤 안동땜 건설로 안정사가 페사되면서 1973년부터 봉정사에서 보관하고 있다.
봉정사 극락전과 3층석탑
이 건물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목조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정면 3칸,측면4칸의 맞배지붕 주심포 건물로 고려시대의 건물이지만 삼국시대의 건축양식을 내포하고 있다.
1972년에 실시한 보수공사때 밝혀진 내용에 의하면 건립 후 첫 수리는 고려 공민왕12년(1363)이며
그 뒤 조선 인조3년(1625),순조9년 (1809)3차에 걸친 수리가 있었다.
원래는 대장전이라 불렀으나 뒤에 극락전이라 이름을 바꿨으며 기둥의 배흘림,공포의 단조로운 짜임새,
내부 가구의 고격함이 이 건물의 특징이고
건물 앞 3층 석탐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3층 석탑으로 높이는3.18m이며
탑 기단부의 일부가 약간 파손되었으며 상륜부의 일부가 남아 있지 않지만 완전한 2-3층 석탑이다.
극락전의
아미타 부처님
고금당
화엄강당
만세루가 보이는 봉정사 입구
봉정사 입구를 옆에서 본 모습
영산암
안쪽에 보이는 영산암
영산암 입구
영산암
낡아버린 영산암
이 안에 부처님과 협시불 두 분을 모셨는데
땡전 두닢으로 부처님의 마음을
사로 잡았을까?
부처님과
협시불인 우측 관세움 보살과
좌측 지장보살님은 문에가려 찍지 못햇다.
삼성각
작은 개집과 비교가 된다.
장작이 쌓여있는 모습을 보니
늙어가는 영산암과 잘 어울린다.
봉정사
682년(신문왕 2) 의상(義湘)이 창건한 절로 알려져 왔으나, 1971년 극락전에서 상량문이 발견됨으로써 672년(문무왕 12) 능인(能仁) 대사가 창건했음이 밝혀졌다. 천등굴에서 수학하던 능인 대사가 도력으로 종이로 봉(鳳)을 만들어 날렸는데, 이 봉이 앉은 곳에 절을 짓고 봉정사라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창건 후 능인은 이 절에다 화엄강당(華嚴講堂)을 짓고 제자들에게 전법(傳法)하였다 한다.
또 일설에는 능인이 화엄기도를 드리기 위해서 이 산에 오르니 선녀가 나타나 횃불을 밝혔고, 청마(靑馬)가 앞길을 인도하여 지금의 대웅전 자리에 앉았기 때문에 산 이름을 천등산이라 하고, 청마가 앉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절 이름을 봉정사라 하였다고도 한다. 창건 이후의 뚜렷한 역사는 전하지 않으나, 참선도량(參禪道場)으로 이름을 떨쳤을 때에는 부속암자가 9개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6·25전쟁 때는 인민군이 머무르면서, 절에 있던 경전과 사지(寺誌) 등을 모두 불태워, 역사를 자세히 알 수 없다. 안동의 읍지인 『영가지(永嘉志)』에, ‘부(府)의 서쪽 30 리에 천등산이 있다.’고 하였으며, 1566년(명종 21) 퇴계이황(李滉)이 시를 지어 절의 동쪽에 있는 낙수대(落水臺)에 붙였다는 기록이 있어 조선시대에서도 계속 존속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000년 2월 대웅전 지붕 보수공사 때 발견된 묵서명을 통해 조선시대 초에 팔만대장경을 보유하였고, 500여 결(結)의 논밭을 지녔으며, 당우도 전체 75칸이나 되었던 대찰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한국을 방문하면서 1999년 4월 21일에 봉정사를 방문하기도 하였다.
현재 이 절에는 부석사의 무량수전(無量壽殿)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알려져 있는 국보 제15호인 봉정사 극락전을 비롯하여, 보물 제55호인 봉정사 대웅전, 보물 제448호인 봉정사 화엄강당, 보물 제449호인 봉정사 고금당(古今堂) 등의 지정문화재와 무량해회(無量海會: 僧房)·만세루(萬歲樓)·우화루(雨花樓)·요사채 등 21동의 건물이 있다.
이 밖에도 고려시대에 건립된 것으로서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82호로 지정된 총 높이 3.35m의 삼층석탑이 있고, 경판고(經板庫)에는 대장경 판목이 보관되어 있다. 부속암자로는 퇴락한 영산암(靈山庵)과 오른쪽 골짜기 부근의 지조암(智照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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