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2. 20. 13:46ㆍ구르미 머무는 언덕
부
칠십 살 생일케익 촛불을 부는 울 마누라
친척들을 불러 대접하던지 좋은 곳으로 여행을 다녀 오던지 하라는 자식들의
성화에도 팔십은 되어야 격이 된다고 고집부리는 주름살도
예쁘게 늙은 울 마누라가 입심 좋게
생일케익의 촛불을 끄고 있다.
우리 시대에의 결혼이란 조그마한 셋방을 얻어 멋모르고 시작하는 신혼살림이
대세였었고 없는 살림 장만하는 재미도 쏠쏠했는데 지금 젊은이들의
결혼생각에 비해 크게 흉볼 일도 아닌 당시의 생활상이었다.
사랑이란 두글자가 평생행복이라 믿었기에 둘이 하나 된 신혼의 달콤함에
빠져든 사이 세월을 가로막는 현실들이 조금씩 고개를 쳐들며
거울에 실금가듯 못된 갈등들이 시동을 건다.
자식 낳아 기르고 가르치며 나타나는 사랑의 아픔앓이 속에서 사랑과 행복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조차 잃어버린 채 안개속 동굴을 헤쳐 나가는
의무감만이 장승처럼 버티며 부부의 연을 이어간다.
결혼이란 굴레의 갈등이 비 오듯 했지만 참고 견디고 인내해낸 밉고 고운 사랑들이
인생통장에 차곡차곡 저축되었고 그 원동력 덕분에 울 마누라
칠십 살 생일케익이 초촐 하지만 큰 잔치가 되었으며
알콩달콩 사는 우리부부를 주위에선 부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있는 그대로 꾸밈없이 생활하기 때문에 좋게 이야기 해 주시겠지만
이런 말 들을 때마다 마음이 흡족해지는 것을 어찌하랴..ㅎㅎㅎ
사랑도 슬픔도 애환도 그리움도 좌절도 미움도
나와 함께한 사십육년의 세월이란 반죽속에 녹아들어
흰머리와 주름살로 빗어낸 오래된 도자기처럼
아름다운 울 마누라...
사십육년의 세월이 만들어낸 울마누라..
이제 시골로 내려와 살고보니
구름위에 붕떠서 꿈꾸듯 사는 느긋한 삶이 또 다른 인생처럼
덤으로 다가오고 이런 삶을 행복이라고 하던가?
어두운 곳에서 힘들어 하시며 사는 분들에게
큰 죄를 짓고 사는것 같아
죄송스럽기 그지없다.
우리부부의 남은 여생이 어디까지인줄 알 수 없지만
지금처럼 마음이 부자로 건강도 부자로
깨소금 볶는 고소함이 풍기는 종착역을
향해 멋지게 달려 갈 것이다.
'구르미 머무는 언덕'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생 딸내미 시집가는날 (0) | 2016.01.17 |
---|---|
겨울꽃 (0) | 2016.01.04 |
구르미 머무는 언덕을 찾아온 친구들 (0) | 2015.12.07 |
구르미 머무는 언덕에 눈이 20cm 넘게 왔어요 (0) | 2015.12.03 |
구르미 머무는 언덕을 찾아온 고성여중고 동기들 (0) | 2015.1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