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0. 31. 21:13ㆍ나의 글
청량사 가는 길
단풍이 절정을 이루는 시월 말경
숨이 차도록 가파른 언덕으로 이루어진 청량사 가는 길
바람소리에 쉼 없이 떨어지는 낙엽을 밟는 소리
사각사각 산속으로 울려 퍼진다.
오르노라면 길 양편으로 조그맣게 쌓아 올린 돌탑들이
사열하듯 나그네를 반긴다.
재미로 쌓았을까?
소원을 빌었을까?
청춘 남녀 한 쌍 오르던 길 멈추고 돌탑을 쌓아 올린다.
소원을 빌고 정성을 들여도 쉽지 않을 돌탑 맥없이 허물어진다.
그 모습에 깔깔대며 박장대소다.
경망스러움에 빌던 소원도 다 날아갈 듯싶다.
자소봉도 보이고
장인봉도 나그네를 부른다.
차량 한 대가 "절대 불가"란 팻말 무시하고 올라간다.
엔진이 깨지도록 시커먼 매연을 쏟아내면서 말이다.
청정 산속이 마스크를 써야 할 정도로 말이다.
두 발에 발동을 걸어야 오르는 힘든 길
부처님 뵈러 가는 길 땀방울 이마에 송글 송글 맺히고
차가 부럽긴 하지만
뚜벅뚜벅 어느새 산사에 도착한다.
오르다 보니 서너 대의 차량이 언덕 주변에 주차되어 있다.
이 모습에 착한 나그네 부아가 치민다.
"절대 불가"란 글을 읽지 못하는 무식자였으면..
그래도 용서할 수가 없다.
주세붕은 1544년 풍기군수를 지낸 분으로
청량산을 유람한 후 지은 시로 생각이 드는데
한문으로 지은 시를 한글로 풀이한 것 아닐까?
어느 분이 써서 주변 바위에 걸쳐 놓았다.
청량사의 중심 전각인 "유리보전"은
약사여래를 모신 전각이라는 뜻
현판의 글씨는 고려말 공민왕의 친필로 알려졌다.
유리보전의 약사여래
흙으로 만든 뒤 그 위에 삼베를 입히고 말리는 과정을 반복해서
일정한 두께를 얻은 후 조각하여 만든 건칠 불상이다.
바람+소리= 바람소리일 텐데
청량산인께서
모르실 이유는 없을터..
퇴계 이황이 사랑했던 청량산의 이모저모
이 탑은 근래에 만들어진 듯하다.
산사 어디를 가나 어느 장소이든 복전함이
눈에 거스르니 나그네는 불자와는 먼 사람일 것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말사이다.
청량산 연화봉(蓮花峰) 기슭에는 내 청량사(內淸凉寺)가, 금탑봉(金塔峰) 아래에는 외 청량사(外淸凉寺)가 있다. 두 절은 모두 663년(문무왕 3)에 원효(元曉)가 창건하였다는 설과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으나 창건 연대로 볼 때 의상은 중국에 있었으므로 원효가 창건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창건 이후 오랫동안 폐사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중건 등의 역사는 전하지 않는다. 다만, 창건 당시 승당(僧堂) 등 27개의 부속건물을 갖추었던 큰 사찰이었다는 것만 전하여지고 있다. 현재의 두 절은 비록 거리가 다소 떨어져 있지만 상호 연관적인 관계에 있다.
내 청량사는 부대 하는 당우로 볼 수 있는데, 전자를 유리보전(琉璃寶殿), 후자를 응진전(應眞殿)으로 별칭 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현재 여승의 수도처가 되고 있는 두 절은 극히 사세가 미약하며, 단지 유리보전만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7호로 지정되어 있다.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