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6. 25. 11:41ㆍ나의 글
귀촌이라는 단어/오공
안개가 산모퉁이를 돌아 한폭의 동양화를 그려내는 깊숙한 산속엔
화전민들이 농사 짓던 흔적들이 여기 저기 반달 모양으로 아련히
남아 그들의 고단했던 삶과 애환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화전민들의 삶과 동식물들의 발자취를 안고 계곡물은 쉼 없이 흐르고
시련의 사계절을 수 없이 겪으며 아름다운 마을로 변한 모습이 마음에
들어 3년전 조그마한 집을 짓고 정착하게 된다.
도시생활을 접고 막상 귀촌을 결심 하려니까 장가 못간 자식의 의식주
문제가 걸림돌이었는데 부모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밀어 주었기에 시골로
내려와 전원 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대대로 땅을 일구며 살아온 동네분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이 문제였는데
다행이랄까 먼저 귀촌한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마을 주민들과 함께 살아
가는 지혜도 얻게 되었고
귀촌한분 중 반쪽만 내려온 분이 몇 있는데 부인들이 귀촌 결정을 못 해
홀아비처럼 농사와 벌등을 키우며 소일 하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주변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고 담을 쌓고 외톨이로 보내는 분들도 계시니 안타까울 뿐이다.
어느 농촌도 그렇겠지만 노인 인구가 급격히 늘고 있는 실정이다.
내가 사는 면도 65세이상 노인들의 비율이 50%를 넘는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젊은이가 많은 것도 아니다.
모두들 60세를 전후한 농민이 50%를 넘고 곧 65세가 다가 온다.
다행이랄까? 우리 마을에 외국 며느리들이 낳은 아이들 4명이 유치원과
초등학교 다니고 있어 덜 삭막 해 보인다.
깊은 산속이라 눈이 오면 허기진 동물들의 어지러운 발자국에 나무에
쌓인 눈꽃이 순백의 아름다움을 더해가고 발이 묶이면 화덕에서
고구마도 구워 먹고 놀이 문화로 세월을 낚는 시골생활을 상상 해 보라..
추위에 손을 호호 불며 집앞의 눈을 치우고 장작을 패며 겨울을 보내는 일
빼놓을 수 없다. 겨우내 말린 시래기를 된장에 무치고 끓이고 김이
모락 모락 피어 오르는 밥에 김치를 찟어 올려 먹는 맛,전원생활에서
있을 수 있는 맛일 것이다.
겨우내 땅속에서 겨울을 보낸 화초들이 힘차게 새싹을 밀어 올린다.
추위를 뚫고 그중 제일 먼저 노루귀꽃이 앙증스레 새싹을 터트리고
카톡으로 봄소식을 알리는지 여리고 예쁜 새싹들이 기지개를 펴며 이곳
저곳에서 새싹을 피어낸다.
경노당에서 화투놀이로 겨울을 보낸 농부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밭을 갈고
비닐을 씌워 씨뿌리며 한해 농사를 시작한다. 농사지으며 큰 돈은 벌지
못하지만 앉아 하는 농사일로 어그적거리며 걷는 걸음걸이만 빼면
불만이나 어두운 곳을 읽을 수 없다.
도시에서 못했던 일들이 나를 기다린다.
면에선 주민들을 위해 컴퓨터, 기타, 노래 그리고 생활댄스 등을 상시
운영하고 그곳에서 독수리 타법으로 컴맹을 탈출하며 동영상 포토삽 스위시
까지 두루 배우지만 생각대로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하루가 모자랄 정도로 바쁘다. 백수가 과로사 한다더니 일이 너무
많다. 노래교실에서 음치 박치 탈출과 카페 운영, 내 블로그 운영과
공짜 수채화교실 새롭게 사귀는 이웃들과의 모임등이 연일 계속된다.
도시에서 누릴 수 없는 이런 일들이 65세 이상이면 모두 공짜로 할 수
있는 곳이 시골일 것이다.
차량의 굉음과 먼지, 퀘퀘한 담배 냄새에 길바닥은 온통 껌자국들이
널려있는 회색도시, 몇년전까지 살던 이런 도시를 생각하면 귀촌으로
얻어지는 행복이 햇살처럼 퍼져 나간다.
스프링클러가 땀이 나도록 돌지만 가믐을 해소 하기엔 역부족에 해갈이
안되니 축 늘어진 먹거리들 표정이 불쌍 해 보이지만 역경을 이겨내며
수확의 기쁨과 슬픔을 슬기롭게 풀어 나간다.
우리집 텃밭에선 먹거리들이 근육질을 자랑하며 커 가고 있다.
농약과 비료를 멀리한 가지와 토마도가 사이좋게 커가고 고추가 잘도
자라준다. 상추와 쑥갓 그리고 근대와 아욱들도 우리 부부의 사랑과
정성으로 먹음직스럽게 잘도 자라준다.
벌과 나비가 꽃밭으로 날아들고 아름다운 새소리가 청아하게 들린다.
별들이 쏟아지고 개구리 울음소리 울려 퍼지는 정겨운 시골의 삶을 도시인
들은 상상 할 수 있을까? 내가 꿈꾸던 곳 밤하늘의 별들을 헤아리며
시골생활에 동화되어 간다.
온갖 꽃들이 뜨락을 장식하고 그 중 백합이 화려하게 피어 매꼼한 향기를
뿌려댄다. 바람에 실린 향기에 그만 숨이 멈출것 같고 이에 질세라
온갖 꽃들이 곤충들을 부르고 잠자리들은 낮은 저공 비행을 즐기면서 초가을부터
번식과 겨우살이 경쟁이 더욱 치열하게 벌어진다.
집사람은 매일 아침 꽃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밤새 이슬 맞아 추웠지?
참으로 예쁘구나, 우리집에 와 주어 감사하단다, 너를 보면 볼수록 행복
하단다. 내년에도 예쁘게 피워 줄거지? 이렇게 말을 걸면 꽃들도 방긋
웃으며 짙은 향기로 사랑을 화답한다.
노란 잔디가 곱게 다듬어진 정원의 하얀색 의자가 주인을 기다리고
집사람과 나는 그림속 주인공처럼 그 의자에 앉아 잔잔한 음악과 함께
진한 향이 묻어나는 커피를 마시며 지난 3년간 보냈던 일들과 귀촌이라는
단어로 얻어진 "행복의 스폰지" 속으로 끝없이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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