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그리던 지리산 종주를 끝내며

2012. 4. 25. 15:40산행과 산행기

 

 꿈에 그리던 지리산 종주를 끝내며!!!|

오공

햇살은 대지위에 살포시 내리고 높고 푸른 창공 은 비단결처럼 부드럽다...

지리산 산행이라 그런지 죽전 정류장엔 평소 못 보던 분들이 버스를 기다린다.

아마도 지리산의 가을 정취를 느끼려나 보다...

 

도심을 벗어난 버스가 지리산 국립공원의 산 아래에서 제일 높다는 심원 마을을

향해 돌아 오르니 붉은색 단풍으로 수놓은 산세가 눈을 즐겁게 해준다.

산허리를 돌때마다 멀미에 시달리는 회원님이 안쓰럽다.

 

지리산을 향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오르는 발길이 가볍다. 노고단 전망대에서 

지리산의 웅장한 산세에 감탄사 연발이다. 손에 잡힐듯 저 멀리로 반야봉[1733.5m]의

웅장함이 마음을 설레게 한다.. 너무 감격스럽다...두 손을 벌려

지리산을 통째로 안아본다.

 

11시30분경부터 돼지령을 지나 임걸령으로 산행이 이어진다. 겨울 문턱에 선

앙상한 나무들 모습에서 늦가을을 읽어본다. 피아골의 대피소 앞 안내판 대로

내려가자는 일행과 임걸령 샘터에서 식사하고 내려가자는 일행이 따로

헤어져 옹기종기 모여 도시락을 나눠 먹는 모습이 너무나 정겹다.

 

당일 피아골 산행을 끝으로 내려갈 회원님들과 우리는 이곳에서 헤어져야 한다.

공청수님 제안으로 지리산 종주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일정이 빠듯하다.

 벽소령 대피소까지 저녁내로 도착해야 된다. 박수원, 오영상, 그

리고 공청수님과 그의 생질인 김광수 군 외 다른 회원님들도 함께

하자고 했지만 사전 대피소 예약을 못해 권할 수 없었다.

 

노루목을 지나 반야봉과 삼도봉으로 갈라지는 길목엔 가을빛이 나뭇가지

사이로 얼굴을 내민다. 오늘 중 벽소령에 가야한다. 시간이 없어 반야봉은

그냥 지나기로 했으니 아쉽다. 그래서 생각이 난다.. 누군가 천왕봉과 반야봉을

빼놓고 지리산을 말하지 말라고 했던 것을....얼마 후 도착한곳이

삼도봉 이다. 삼각뿔 표지판이 이색적이다.

 

피아골 쪽을 내려다보면 볼수록 장엄히 펼쳐지는 골자기 깊이를 가늠 할 수가 없다.

박수원 부회장이 큰 소리로 "달수야" 를  힘차게 소리쳐 부른다. 메아리가 멀리 멀리 퍼져나간다... 

방금 헤어진 안방마님 부르는 것일까? 회원들과 함께 할 수 없는 산행이 아쉬워서일까? 

이토록 지리산은 수없는 사연이 넘실대고 첩첩히 드리운 산 너울 속은 한국인의 애환이 담겨 있다.

 

옛날 물건들을 맞교환 하던 곳이 화 개 재 라 하던가? 그

곳을 지나 눈앞에 우뚝 솟은 토끼봉[1534m]에 다다른다.

이 틀 치 식량과 옷들로 무거워진 배낭[각자15kg정도]무게는 줄지 않고

통증으로 어께는 무겁고 뱃속 가스까지 따발총 소리로 온 산을 오염시킨다.

 힘들 때 마다 좌우산세를 내려다 보며 몸과 마음을 추스린다. 

겹겹이 명암을 달리하며 한 폭의 산수화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깊은 골자기 야생화는 서로 시샘하듯 이름 모를 향기를 터트린다.

그 향기에 힘든 고통도 사라진다.

 

연하천 대피소를 가려면 아직 1시간30분 정도 더 가야 한다.

산죽군락을 돌아 오르내림이 계속 된다. 어느 한 코스도 쉽게 산행 하도록 놓아주지 않는다.

벽소령 대피소에 전화하여 예약시간보다 늦게 도착 된다고 알리지만 늦었으니

연하천 대피소에서 자고 오란다. 연하천은 예약이 안 되었을 뿐 아니라 개인이

운영 하는 것이라 지저분하고 담요에서 냄새가 많이 난다고 벽소령으로 가야 한단다.

 

김광수를 벽소령으로 먼저 보내 시간을 벌기로 하고 길을 재촉하지만

해는 저물고 서서히 어둠의 커튼이 내린다. 아 뿔 사! 연하천을 지날 때엔 

저녁 5시 30분이 지나고 있다. 공청수 님 의 얼굴이 파랗게 질린다.

김광수군이 벽소령쪽 어디쯤 가고 있는지 걱정이 되어 터지지도 않는

휴대폰으로 수 없이 통화를 시도한다. 어두워서 더 이상 갈수 없어 큰 바위 위에서

기다리고 있단다. 벽소령엔 먹을 물이 없으니 연하천 에서 물을 구해야만

밥을 지어 먹을 수가 있단다. 간신히 빈 패드 병에 물을 채워 벽소령으로 향한다.

앞을 분간 할 수 없는 어둠이 깔린다.

 

김광수를 연속 부르고 손과 발은 더듬이 역활로 전진 한다.

다행히 얼마 후 바위 속에서 오들 오들 떨고 있는 생질을 찿을수 있었다.

안도의 숨소리가 긴 여운을 남긴다.

 

저녘 7시10분경 벽소령에 도착했다. 산행을 시작한지 7시간40분만이다. 

자리 배정 받고 짐을 정리 한 후, 공청수 님 의 요리시간이 시작된다.

칼이 없어 손으로 힘들게 조각낸 삼겹살을 굽고 남도 김치와 파김치를

내준 전라도 산 꾼과 멋진 식사가 이루어진다..

얼큰한 찌게와 곁드린 한잔의 술맛은 평생 잊을수없다.

박수원 부회장과 공청수 님은 앉았다 눕기를 반복하며 눈썹과 씨름 하며 뜬눈으로 기상이다..

 

좋은 공기 때문일까 아침 기상이 상쾌하다. 물이 없어 세수는 물론 이를 닦을 수도 없다.

입은 채 자고 일어나도 누구하나 흉보는 자 없다. 

대충 식사를 끝내고 다음 잠자리인 장터목 산행을 시작한다.1

600M 가 넘는 연봉들로 이루어진 긴 능선길이지만 우리의 앞길을 누가 감히 막을 수 있겠는가?

덕평봉[1521.9M] 영신봉[1651.9M]을 넘어 넓게 펼쳐지는 세석평전에 다다른다.

저 멀리로 아물거리듯 장터목 산장이 보이고  까까머리 제석봉[1806M]위로 꿈의

천왕봉[1915.4M]이 위용을 자랑하며 한 눈에 들어온다.

 

촛대봉[1703.7M]이 앞을 가로 막고 발목을 잡는 힘든 구간이다.

몸에선 땀 냄새가 진동 하지만 눈은 깊은 골자기로 빨려 들어가고

산줄기는 미끄럼 타듯 흐른다. 연화봉[1667M]을 오르니 옛날 장이 섰다고 하는

장터목이 보인다. 현재 대피소가 있는 곳이 대부분 장터일것이다.

옛날 짚세기[짚으로 만든 신발]신고 지게를 지고 오르내렸을

조상들 모습에서 연민의 정을 느껴본다,,,,

 

다음날 새벽 5시시다. 천왕봉 일출을 보려는 행렬이 이어진다.

달빛과 별빛을 가슴에 안고 나서면 북두칠성이 새벽산행을 안내한다.

뒤 돌아보니 멀리 연화봉 쪽과 그 반대쪽 중봉에서도 살아 움직이는

뱀처럼 거대한 랜턴 불빛이 꿈틀거린다. 일출을 보려는 산꾼들의 산행이

계속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서로의 소망과 사연을 안고 오른다.

전주에서 왔다는 10살짜리 초등 학생이 힘들어 하는 엄마 아빠를 챙기며 숨 가쁘게 오른다.

부모와 함께하는 산행이 가족의 소중함으로 이어지고 평생 기억에 남으리라.

 

천왕봉 오르기 위해선 통천문을 통과 해야한다. 희노애락의 사연을 안고 많은 분들이

오르내렸을 이곳을 통해 꿈에도 그리던 천왕봉에 올라 손도장을 찍는다.

아! 천왕봉이여! 나의 천왕봉이여!!! 서 있을 수도 앉을 수도 없을 많은 분들이 

천왕봉 표지석을 떠안고 일출을 보기 위해 추위와 싸우며 기다린다.

산을 휘감은 띠구름 저 멀리로 떠오르는 태양은 보통 산위로 오르는 태양과

다름없건만 탄성으로 천왕봉이 들썩인다. 모든 이의 소원을 이루어 주소서.

 

환희를 안고 천왕봉을 내려오면 장터목에서 태우는 경유 냄새가 온산을 오염시키며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청정지역 지리산 국립공원이 인파로,

쓰레기로 제 모습을 잃어 간다. 태양열을 이용하거나 풍력 발전은 어떨까? 다른 대안은 없을까?

 

하산 길 백무동 계곡을 내려오며 깊은 상념에 빠진다. 빨치산의 붉은 사상도

품어주었던 지리산으로 장교를 포함 공수부대 대원 약 2백여명이 완전 군장으로 오른다.

지리산은 이렇게 역사의 뒤안길 좌우 이념을 품속에 숨기고 우리 일행을 포용한다....

 

이제 지리산의 35km의 종주를 끝맺으려 한다..백무동의 계곡은

붉게 물든 단풍으로 불타고 있다. 우리일행은 하산하면서

쓰레기 줍는 일로 고마움을 대신 하려한다.

우리들 할일이 이것 외 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나의 지리산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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